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웨이 침공 (문단 편집) === 노르웨이 침공 ===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그놈의 '''바다'''였다. 물론 독일 해군이 아무리 약체라 한들 노르웨이 해군보단 강력했지만, 만에 하나 가다가 영국 해군에게 걸리면 독일 해군과 이들이 수송하고 있는 독일 지상군은 그대로 북해의 [[발할라]]로 강제 관광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또 노르웨이의 영토가 남북으로 상당히 긴 편인데다 독일이 확보해야 할 핵심지역 다수가 북부에 있는 관계로 노르웨이 전역에 동시다발적인 침공을 개시해야 한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독일군은 노르웨이 침공에 제21군 휘하의 총 5개 신편 보병사단(69, 163, 181, 196, 214)과 [[폴란드 침공]]에서 실전을 경험한 제3 산악사단 예하 2개 연대, 10 항공군단, 그리고 '''해군의 대부분'''을 투입하였으며, 제21 군단의 사령관직은 [[귄터 뤼첸스]]에게, 그리고 제3 산악사단의 지휘관은 니콜라우스 폰 팔켄호르스트에게, 그리고 제10 항공군단의 지휘관에는 [[에두아르트 디틀]]이 임명되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지휘권이었으며 실질적으로는 뤼첸스가 아니라 팔켄호르스트와 디틀이 육군 병력의 총지휘를 맡았다. 참고로 히틀러는 본래 육해군을 하나의 통합군으로 통일한 뒤 한명에게 지휘를 맡기고자 하였지만 성사되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 --시대를 앞서간 통합군 신봉론자 히틀러-- 작전 입안 단계에서는 제22 공정사단을 투입한 대규모 공수작전도 계획되었으나 해당 부대는 [[황색작전|서유럽 침공]]으로 전용되었다.[* 이후 이 부대는 네덜란드 침공에 투입되었다가 큰 손실을 입었다.] 지상군 투입을 위한 마땅한 상륙함이 없던 관계로 [[중순양함]] 이하 대부분의 함선이 차출되었다. 그런데 독일이 배가 많은 것도 아니었기에 [[어뢰정]], 소해정, 심지어는 훈련함까지 가리지 않고 긁어모아야 했다. 여기서 민간용 선박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상선이나 화물선을 동원하는 방안도 검토되었다. 하지만 영국 해군이 월등한 상황 속에서 느리고 취약한 화물선을 이용하는 건 문제가 많았고, 결정적으로 노르웨이 영해에 진입하려면 무장 병력이 잔뜩 실린 화물선에 노르웨이 [[도선사(직업)|도선사]]가 탑승해야하는 골때리는 상황이 연출되어야 했다. ~~이 사람들이 지금 다 어디로 가는 거죠?~~ 결국 기습을 위해 수송선단 활용 안은 폐기되었고 그래서 군함들이 모조리 병력수송에도 동원된 것이다. [youtube(A8HeTWdlEd4)] 베저위붕 작전(Unternehmen Weserübung)이라 이름 붙여진 이 침공작전에서 독일 침공군은 총 6개 그룹으로 구성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Weser%C3%BCbung.png]]|| || 침공 당일 독일군의 주요 목표도시들. || * 그룹 1 - '''목표 [[나르비크]]'''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 그나이제나우(Gneisenau) 및 구축함 10척 지상군으로 3산악사단 소속 병력 2,000여 명. * 그룹 2 - '''목표 트론헤임'''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퍼(Admiral Hipper) 및 구축함 4척 지상군 1,700여 명. * 그룹 3 - '''목표 [[베르겐]]''' [[쾨니히스베르크급 경순양함]] 쾰른(Köln),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및 훈련함 [[브렘제]](Bremse), 어뢰정모함 카를 페터스(Karl Peters), 어뢰정 6척 지상군 1,900여 명. * 그룹 4 - '''목표 [[크리스티안산]](Kristiansand) 및 아렌달(Arendal)''' [[쾨니히스베르크급 경순양함]] 카를스루에(Karlsruhe) 및 어뢰정 10척 지상군 1,100여 명. * 그룹 5 - '''목표 [[오슬로]](Oslo)'''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블뤼허(Blücher),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뤼초(Lützow), [[엠덴급 경순양함|엠덴]] 및 어뢰정 3척, 소해정 8척 지상군 2,000여 명. * 그룹 6 - '''목표 에게르순(Egersund)''' 소해정 4척 지상군 150여 명.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그룹 1·2·3으로 이들의 목표는 전부 노르웨이 서부 [[피오르]] 협만(峽灣)지역 해안의 중요 핵심 항구들이었다. 이 중 그룹 3의 목표였던 베르겐은 크릭스마리네의 북방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도록 예정되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를 공격하는 그룹 5도 상당히 중요했으며, 그룹 4와 6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졌고 따라서 배정된 함선의 수도 적었다. 특히 그룹 1은 작전상의 최북단이자 전쟁의 주요목표인 나르비크를 공격해야 했기 때문에 도중에 영국 해군의 습격을 받을 우려도 높았고, 때문에 매우 귀중한 전함 2척이 할당되었으며 할당된 구축함의 수도 무려 10척이었다. 나치 독일 해군의 가장 강력한 전함이었던 [[비스마르크급 전함]] 초도함인 비스마르크는 1940년 8월에 취역하였던 관계로 침공 시점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전함은 샤른호르스트급 2척이 전부였다. 즉, 독일 해군은 나르비크에 보유 전함 전력을 다 때려박은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